2019.05.25 13:26

5월 사람책도서관

맑고 고운 오카리나 선율로 행복한 홍천을 꿈꾸는
박병각(오카리나 장인, 연주가)을 읽다

 

 

5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꿈이음사람책도서관에서는 오카리나 연주가이면서 제작자인 박병각 가람오카리나 대표를 초대하여 ‘오카리나 선율로 행복한 홍천을 꿈꾸는, 오카리나 장인 및 연주가 박병각의 삶’이란 주제로 ‘5월 꿈이음사람책도서관’을 개최하였다.

 

사람책, 박병각 대표는 85년부터 33여간 교직 생활을 하였고, 명예퇴직이후 홍천 노일리에 가람오카리나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박대표는 젊었을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생때는 선생님으로부터 음대 진학을 추천받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사범대를 진학했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교사시절에도 꾸준히 단소나 대금 연주에도 심취하였다. 특히 20여년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카리나 소리에 매료되어 오카리나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오카리나를 배우기 위해 백방으로 오카리나 강사를 찾았으며 당시 대구에 거주하시는 강사를 만나게 되었으며, 강사의 상황때문에 직접 뵙지는 못한채 전화를 통하여 사사를 받았다. 운전중 빨간 신호등 대기시간의 짧은 시간에도 오카리나 연습을 하는 등 오카리나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그는 오카리나를 취미생활에서 출발하여 연주가로 활동으로 이어갔다. 오카리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정보 교환과 교류의 장을 만들어 오카리나 보급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활동 초창기, 주로 오카리나를 이탈리아, 일본에서 수입하여 사용하였지만 좀더 한국 정서에 적합하고, 감정과 울림이 있는 소리로 연주하고 싶어 직접 제작하여 연주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호응과 주문 요청에 따라 본격적인 공방까지 운영하게 되었다.

 

“취미로 시작한 오카리나가 인생 2막의 중요한 직업이 될 줄 몰랐다. 누구에게나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취미개발에 노력하길 권한다. 자신에게 잘 맞는 직업이 가장 좋은 직업이다. 열정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일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책, 박병각의 말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메아리 친다.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4.23 10:30

 

‘꿈이음사람책도서관’(관장 신덕진)이 지난 19일 석도익 소설가(꿈이음 이사장)를 사람책으로 초대해 ‘배움과 나눔의 끝은 없다’란 주제로 개최됐다.

홍천출신 석도익 소설가는 청년시절 향토재건중학교를 설립 운영,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 지역위원, 바르게살기운동 홍천군협회의회 회장, 홍천예총 및 홍천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 자연학습지도자, 김유정문학촌 문학해설사, 한서장학회 상임이사, 홍천문화원 부원장, 꿈이음 이사장직을 담당하고 있으며 수필가, 소설가, 칼럼니스트, 문학해설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사람책으로서 석도익은 젊었을 때부터 꾸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배움의 도전과 실천의 삶을 소개했다. 또한 재능과 배운 것들을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나눔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가꾸어 나가고 싶다는 꿈을 독자들과 나눴다.
‘꿈이음사람책도서관’(관장 신덕진)이 지난 19일 석도익 소설가(꿈이음 이사장)를 사람책으로 초대해 ‘배움과 나눔의 끝은 없다’란 주제로 개최됐다.

홍천출신 석도익 소설가는 청년시절 향토재건중학교를 설립 운영,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 지역위원, 바르게살기운동 홍천군협회의회 회장, 홍천예총 및 홍천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 자연학습지도자, 김유정문학촌 문학해설사, 한서장학회 상임이사, 홍천문화원 부원장, 꿈이음 이사장직을 담당하고 있으며 수필가, 소설가, 칼럼니스트, 문학해설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사람책으로서 석도익은 젊었을 때부터 꾸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배움의 도전과 실천의 삶을 소개했다. 또한 재능과 배운 것들을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나눔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가꾸어 나가고 싶다는 꿈을 독자들과 나눴다.

그는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여전히 머리가 고프다며, 세대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늘 열심히 배우고 열린 사고를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무리한 세대 무시나 추월은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음과, 소설가로서 첫 번째 펴낸 소설인 ‘사리암’과 관련해서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이 사리를 분별하고 아는 것이며, ‘사리암’을 줄이면 사람, 그리고 더 줄이면 ‘삶’이다”라며 자신의 삶 전반에 대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꿈이음사람책도서관’은 매월 1회, 사람 책을 초청해 진행되며, 5월 24일에는 오카리나 연주가이면서 홍천에서 오카리나를 제작하고 있는 박병각 씨를 초청, 사람책을 개최할 계획이다.

사람책도서관은 청소년 및 일반 시민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으며 참가 신청 및 문의는 ‘꿈이음작은도서관(435-9925, http://ggdream.org)으로 하면 된다.

출처 : 더뉴스24(http://www.the-news24.co.kr)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4.02 15:55

동동산에 애국혼

소설가 석 도 익

 

 

큰 용에 기상이라는 대룡산위에 안개는 천수(天水) 되어 방울방울 모이고 골골이 합쳐져서 성동천을 이루고 홍천의 넓은 내에 몸을 섞는다.
육탄 살신성인 강재구 소령이 산화한 강재구공원을 지나면 구절산 성골을 가로막은 대룡저수지 거대한 둑을 바라보며 성동천을 끼고 대룡산 길을 조금 더 가다보면 오른쪽 산자락 휘감아 돌아가는 물굽이 5미터 바위벼랑이 시린 물에 발 담그고 있는 300여평 남짓한 밭 가운데 남아있는 동산이 바라보인다.
예전에 이곳 산자락에는 산돌조각들이 많이 쌓여있는 곳을 돌아가는 길이라. 하여 지명이 돌모로인 이곳에는 내를 중심으로 농지지대인 안마을과 산자락 마을이 포실하게 촌락을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은 초가지붕에서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변한 건 없어 보인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이곳에 살던 신여균(당시21세)청년이 조국에 국운을 한탄하며 아침마다 매일같이 동산에 올라가서 발을 동동구루며 독립만세를 불렀던 곳이며 뜻을 같이하는 전원봉(성동리) 김복동(능평리) 최승혁(하화계리) 한용섭(하화계리) 동지들과 자주모여 만세를 함께 부렸다 한다.

 

당시 홍천은 횡성과 더불어 강원도 내에서는 드물게 천도교도와 기독교가 공동으로 만세운동을 추진한 지역이다.
선두에서 추진한 천도교인 오창섭(吳昌燮)과 감리교인 차봉철(車奉哲) 서상우(徐相佑) 인데 이들은 고종인산에 참배 갔다가 서울에 3.1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온 후 비밀리에 추진하였다.
감리교회는 읍내주민을 천도교회는 북방면 주민들에게 이를 계몽시키면서 홍천읍 장날인 1919년 4월 1일을 만세운동 날짜로 정하고 일제 봉기하기로 했다.
이들은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면서 태극기를 만들고 교인을 통해 민중계몽과 동원준비를 갖추었다. 또 오창섭(吳昌燮)을 중심으로 한 천도교회에서는 같은 마을의 교인인 김영옥(金永玉)과 노동근(盧東根)이 힘을합해 북방면을 중심으로 하여 계획을 추진했다.
북방면도 지도자인 성동리의 신여균(申與均) 김원봉(金原鳳)과 하화계리 최승혁(崔承赫)이 합세하여 추진해 나갔다. 업무도 분담하여 기독교도들은 손 태극기를 만들고 천도교인들은 큰 태극기를 만들었다.
매일같이 동동산에 모여 만세를 부르며 앞이 안 보이는 나라 잃은 난민으로 한탄만 하던 이들에게는 속에 응어리진 한을 함성으로라도 토해낼 기회라 생각했던 것이다.
예정된 홍천읍 장날인 4월 1일 홍천읍과 북방면 주민들은 장터로 몰려들었다. 북방면 화동리 능평리 상화계리 중화계리 하화계리 농민은 때마침 홍천 인제간 도로 공사장에서 부역인부로 대기하고 있었다가 장터로 달려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천도교인이 만든 대형 태극기가 시장안에 높이 솟았고 기독교인이 준비한 손 태극기가 군중에게 나누어지고 주동자들이 앞장서서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군청으로 몰려가니 수는 장마 물 같이 불어나서 그 수가 오백여명이 넘었다 한다.
당시 김동훈(金東勳) 군수는 혼비백산하여 행방을 감추고 홍천면장 임준철(林準轍)도 도망가 버렸다, 일제 관리는 만세소리가 진동하는 군중들의 위세에 눌려 우왕좌왕 했다.
특히 북방면에서 도로 공사장에 부역인부로 나왔던 사람들은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연락을 듣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읍내로 들어가 군중과 합류하여 숨어있던 김군수를 찾아내서 그가 차고 있던 칼을 꺾고 팔을 비틀어서 끝내 오만한 군수를 무릎 꿇게 했다.
오후가 되자 춘천에서 헌병대와 수비대 병력이 도착했다. 증원군은 홍천헌병대와 합세하여 주동자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체포된 인원은 일본 측 기록에 33명이라고는 하나 일제검거선풍에 걸려든 사람들은 이보다 몇 배 더 많았을 것이며 이들은 갖은 고문과 고초를 겪었다.
내 나라를 독립시켜달라는 시위운동이 치안을 방해했다는 죄명으로 1년 6개월에서 3개월 징역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살며 갖은 고문과 형벌로 만신창이가 되어 출옥 후에도 그 여독으로 괴로운 일생을 보내야만 했다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그 소리가 지금도 저 동동산에서 들리는 듯하다.

 

지금은 벼랑 뒤쪽으로는 밭이 되어 있어 산이라고 할 수 없는 귀때기 동산에 불과하지만 일제치하에서 숨은 가슴을 열고 소리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던 모습들을 늘 보아왔던 주민들은 어느 결엔가 이곳을 동동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동산 위쪽으로 바라보이는 교각이 서울 양양을 잇는 동서고속도로의 거대한 교각이 보이듯이 그들이 그렇게 발을 동동구루며 열망했던 조국해방이 이루어지고 이제는 세계열강과 어깨를 견주는 선진반열에 올라있는데 이 역사의 터는 잡초와 잡목으로 덮여 숭고한 뜻마저 잊혀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이곳에 잠시 살았던 난궁경 옹이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전해 듣고서 들추어 고증하고 지역민들의 구전을 토대로 옛 기록을 찾아내서 이를 근거로 이곳 동동산을 후세에 기리기 위하여 지역민들과 힘을 합하여 자연석에 비를 새겨 199441일 세우게 되었다.

 

“기미 1919년 홍천4.1운동 앞장서신 김복동 신여균 전윤복 최승혁 한용석님은 피나는 눈물 애타는 절규의 기도로 새벽마다 독립을 개원하사 발을 동동구르며 기도하시니 이름하여 동동산이 되었네” 음각으로 새겨진 이글은 퇴색되어 알아보기 힘들다.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3.13 15:52

 

꿈이음작은도서관_사람책도서관 개최

3월 사람책: 알파카월드 CEO_ 허영철

 

꿈이음작은도서관’(관장 신덕진)에서는 허영철 CEO(알파카월드)를 사람책으로 선정하고 322() 오후 630, ‘창업과 삶이란 주제로 꿈이음사람책도서관을 개최한다.

 

사람책도서관이란? 사람이 직접 책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삶을 나누는 도서관으로 꿈이음작은도서관에서는 청년클럽 동네문화살롱과 함께 매월 1사람책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3월 사람책으로 선정된 허영철 CEO2016K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2017년 홍천 화촌면에 11만평의 국내 최대 규모의 애니멀 테마파크인 알파카월드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꿈이음사람책도서관에서는 허영철 CEO의 시대 흐름과 지역 특성을 고려한 창업 마인드와 경험, 삶을 나누게 된다.

 

꿈이음사람책도서관참여는 청소년 및 일반시민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참가 신청 및 문의는 꿈이음작은도서관( T_435-9925, http://ggdream.org)으로 하면 된다.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2.23 15:05

원로들이 전하는 홍천의 민족정신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世界萬邦)에 고(告)하야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고(誥)하야 민족자존(民族自存)의 정권(政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

 

석도익

 

이는 일본의 강점과 식민정책에 항거하며 자주독립을 쟁취하기위해 대한독립을 선언한 1919년 3.1 기미독립선언문의 첫 부분이다.

 

한일 병합 조약(韓日倂合條約)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일방적인 위력에 의해 이루어진 합병조약(合倂條約)이다. 한일 합방 조약(韓日合邦条約)이라고도 불린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의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는 이를 국권피탈(國權被奪), 경술국치(庚戌國恥) 등으로 호칭한다.

 

이로서 우리나라대한제국은 없어지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식민으로 살아야 했던 민족이 떨쳐 일어나 대한독립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고 항일운동에 서막을 울린 3.1기미독립만세운동이야 말로 민족정신의 발로이며 그 민족정기를 후세에 면면히 전하는 메시지인 것이었다.

 

올해가 민족정신에 횃불을 지피고 함성을 울 린지 100년이 되는 해다. 100년 전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 운동가들의 외침 덕분에 우리민족의 나라가 세워졌고 역사는 다시 이어졌다.

 

선열이 생명을 바쳐 지킨 이 땅에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인데도 우리들 기억 속에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점점 잊혀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홍천군관내 3.1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1일 홍천읍에서 차봉철, 서상우, 오창섭 의사를 비롯해, 홍천읍·북방면 농민 300여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 하였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북방면의 신여균, 전원봉, 최승혁, 한용섭, 김복동 등 다섯 분의 의사가 옥고를 치룬 후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한 1919년 4월 2일 동면에서는 민병소, 민병태 의사가 주민 천여명과 더불어 독립만세 운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의하여 희생되었으며,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장날도 아닌 4월 3일 내촌면 동창마을에서도 김덕원 장두가 동학교도조직을 이용한 거사통문으로 화촌면, 내촌면, 서석면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 등 2개 군 5개면 주민 3천 여 명이 동창들에 집결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이순극, 전영균, 이기선, 연의진, 김자희, 전기홍, 양도준, 이려선 등 8열사는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김덕원 의사는 주모자로 수배 중 체포 수감되어 혹독한 형벌에 두 눈이 실명되어 출옥되었으나 그 여독으로 순국하였다.

 

우리고장 선열은 잃어버린 나라를 찾고자 목숨을 바쳤듯이, 자랑스러운 홍천의 역사를 지키며 풍요를 일구어낸 지금의 원로회 어르신들이 그날의 민족정신을 후세에 새겨주고자 뜻을 함께하고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민족정신의 근본을 이룬 3.1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독립선언문을 비로 새겨서 민족정기의 샘이 되게 하고자 기미독립만세운동 100년을 되돌아보며, 군민의 발걸음 잦은 터에 세움은, 널리 군민의 자손만대 가슴에 길이 전하고자 함이란다.

 

홍천정명 1,000년을 딛고 다시 웅비하는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충정의 고장, 넓은 내 홍천강이 400리를 유유히 흘러가 한강을 이루어주는 홍천에는 어르신의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와 올곧은 젊은이의 힘과 용기와, 아이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이 함께하여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지고, 그 행복이 홍천군에 힘으로 모아지고, 그 힘은 민족정신에 뿌리가 되게 하니 내 고장 홍천의 미래와 우리나라 대한민국 역사는 창대할 것이다.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1.25 11:32

바람난 신과 인간의 적나라한 연애사건들,

 

그리스로마 신화로 읽는 사랑열전

/ 최복현 지음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밌고 흥미로운 신화 속 사랑 이야기, 45가지의 사랑의 빛깔을 읽는다. 

 

 

‘그리스신화로 세상 읽기’라는 테마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우리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갖 사랑들이 있다. 신들 중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끊임없는 바람과 외도,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의 계속되는 시기와 질투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미망인인 어머니와 결혼해 자신의 형제이자 자식을 낳은 오이디푸스의 운명적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던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비극적인 사랑, 미소년 히아킨토스에 마음을 빼앗긴 아폴론의 동성 간의 사랑, 데메테르를 향한 포세이돈의 폭력적인 사랑, 에로스의 장난으로 시작된 아폴론과 다프네의 엇갈린 사랑, 에코의 저주로 인한 나르키소스의 자기 사랑, 조국을 배신하고 천륜을 저버린 스킬라의 사랑 등 45편의 사랑이 망라되어 있다. 바람난 신, 인간과 사랑에 빠진 신, 그리고 사랑에 눈먼 인간들의 숨김없는 연애사건과 은밀한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들춰봄으로써 지금 우리 시대의 사랑을 재조명한다. 기쁨, 슬픔, 눈물, 아픔, 이별, 시기, 질투, 쾌락, 배신, 분노, 좌절, 복수 같은 다양한 사랑의 감정들을 통해 우리는 신화 속 사랑 이야기에 완전 공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막장 드라마 45편을 보는 재미와 흥미, 그리고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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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신들의 여러 성정 가운데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랑은 인류 보편적인 것이며, 신들의 세계는 물론 인간 세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는 사랑 놀음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싶을 만큼 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때로는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아주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난봉꾼이나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막 나가는 여인네를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남녀와 사랑 때문에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한 처녀, 심지어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비극의 주인공도 만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사는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본문 008~009쪽

진정 사랑은 ‘그럼에도’입니다. 가끔 조건 때문에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랑은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조건이 깨지면 사랑도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가정법의 사랑입니다. 양보법인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조건법적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없이 조건만 따집니다. 때문에 막상 그 조건을 충족하면 사랑도 끝나고 맙니다.
-본문 091쪽

 

 

신들은 사람들보다 더한 사랑을 했다

제우스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신으로 그 어떤 신들보다 강력하지만 천하의 바람둥이다. 올림포스 최고의 여신이자 뛰어난 미모를 지닌 헤라에게 구걸하다시피 결혼을 했는데도 제우스의 바람기는 전혀 잦아들지 않았다. 이오, 칼리스토, 레토, 세멜레, 에우로페, 안티오페, 알크메네 등 여신과 님프는 물론이고 인간 여성들과도 끝없이 바람을 피웠다. 그리고 매번 질투의 여신 헤라의 복수가 이어져 그 장면들은 마치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신화에 등장하는 다른 신들 역시 사랑 이야기에서 빠지라면 섭섭할 정도로 19금(禁)처럼 음란할 뿐 아니라 파격적이고 다채롭다. 여신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의 미모를 질투해 아들에게 복수를 부탁했더니 오히려 프시케와 사랑에 빠져버린 에로스, 카산드라에게 첫눈에 반했다가 거부당하자 처절한 복수를 하는 예언의 신 아폴론, 카르데아를 속이고 하룻밤 정을 통한 야누스, 에오스의 유혹에 넘어가 밀회를 즐기는 오리온 등 신들의 사랑이라고 뭔가 신성하거나 인간보다 더 아름답거나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사람들보다 더 난잡하고 너저분하게 얽히고설킨다. 때로는 인물관계나 상황 등이 황당무계하여 막장 드라마조차 조롱할 정도로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실은 그래서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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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다


신화(myth)는 ‘말’ 또는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mythos’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역사’와 달리 허구, 즉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다. 특히 그리스 신화는 문명 이전의 고대 그리스인이 원초적 감각이나 감정으로 체험한 이야기들이 신화로 구전되어 오면서 우리 입맛에 맞게 각색되고 변형되었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다. 저자가 프롤로그에 밝히고 있듯이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 즉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욕구나 욕망, 본능 등이 신화라는 이야기 속으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이나 논리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과장과 왜곡, 그리고 일탈로 사람들의 원초적 본능의 압박이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경험을 하도록 한다.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열광하는 데는 그 때문이다. 신들이 우리처럼 사랑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배신도 하고, 시기와 질투도 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우니까 인간들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인류 보편적인 감정이자 인간 세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목차

 

프롤로그|신들의 사랑, 그 사랑 이야기



1. 연애의 귀재 제우스, 사랑의 바다를 유영하다

연막을 친 제우스와 이오의 사랑
제우스와 칼리스토의 벌처럼 가혹한 사랑
제우스에게 버림받은 레토의 서러운 사랑
제우스와 세멜레의 재가 되어 사라진 사랑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구름처럼 흘러간 사랑
제우스와 안티오페의 잘못 꼬인 사랑
알크메네를 속인 제우스의 이기적인 사랑



2. 연애에 어설픈 남신들, 사랑의 강에 빠지다

에로스를 향한 프시케의 믿지 못하는 사랑
에로스와 프시케의 영원한 사랑
아폴론과 다프네의 엇갈린 사랑
카산드라에게 거부당한 아폴론의 비정한 사랑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동성 간의 사랑
야누스와 카르데아의 장난 같은 사랑
로티스를 향한 프리아포스의 일방적인 사랑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주변을 힘들게 한 사랑
페르세포네에 대한 하데스의 강제적인 사랑
데메테르를 향한 포세이돈의 폭력적인 사랑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의 달콤한 사랑



3. 연애 초보 여신들, 사랑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질투로 시작한 아르테미스와 오리온의 사랑
알페이오스의 사랑을 시험한 아르테미스
속절 없이 끝난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사랑
스킬라를 향한 글라우코스의 짝사랑
에오스와 티토노스의 진실한 사랑
수다로 망친 에코의 사랑
에코의 저주 받은 나르키소스의 자기 사랑



4. 순수한 인간들, 사랑의 숲에 뛰어들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지고지순한 사랑
피그말리온의 꿈을 이룬 사랑
케익스와 알키오네의 아름다운 사랑
죽음도 불사한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운명적인 사랑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변함없는 사랑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죽을 만큼 깊은 사랑
데우칼리온과 피라의 조화로운 사랑
멜람푸스와 이피아나사의 운 좋은 사랑



5. 사랑에 눈먼 인간, 사랑으로 비극을 맞이하다
디오니소스처럼 술에 취한 분별없는 사랑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바람 같은 사랑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비극적인 사랑
천륜을 저버린 스킬라의 사랑
질투로 눈먼 키벨레의 사랑
아탈란테를 향한 멜레아그로스의 잘못 꿴 사랑
아탈란테와 히포메네스의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에케나이스를 배신한 다프니스의 사랑
파리스와 헬레네의 전쟁을 부르는 사랑
알크메네를 향한 암피트리온의 인내로 얻은 사랑
메스트라의 자기희생적 사랑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1.16 09:56

 

 

 

 

1월 15일(화) 저녁 6시 30분 꿈이음 작은도서관에서

꿈이음 첫번째 독서모임을 가졌습니다.

 

첫 모임에서는 참가자 소개 및 모임의 성격, 모임일정 등을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모임의 추천도서로는 '미움받을용기'(저자:기시미 이치로/출판사:인플루엔션)로

앞으로 1월~2월의 독서모임은 미움받을 용기1, 2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주변에 함께 하실 분들께 추천해주시고 참여를 원하시는분은 사무국으로 연락주세요^^~~

 

 

다음 모임일정 : 2019년 1월 29일(화) 저녁6시30분~ 7시 30분(약1시간) 꿈이음 작은도서관

추천도서 : 미움받을용기1 (저자:기시미 이치로/출판사:인플루엔션)

문의 및 신청 : 033-435-9925, 010-3435-6043(꿈이음 담당자)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1.11 11:38

카르페 디엠할 이유

 

죽은 시인의 사회

 

/ 최 복 현

 

 

존재에게는 길이 있다. 존재는 그 길을 만들며 간다. 파이프 연주, 교기를 든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선다. 1859년에 창립된 명문 웰튼 고등학교의 새 학기 개강식이다.

"지식의 촛불을 켜십시오. 이 학교의 4대 원칙은 전통, 영예, 규율, 최고입니다."

명문학교임에 틀림없다. 75%가 명문대학에 진학한다니까. 그럼에도 그 우수한 학생들 중 한 그룹은 나름 4대원칙이 따로 있다. 이들은 저속, 공포, 퇴폐 등을 원칙으로 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란 그룹의 주동이 되는 학생들이이다. 이들은 틀에 매인 공부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느 어른이든 이들을 응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따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 두뇌가 뛰어난 만큼 선생들을 은근히 골탕 먹이는 학생들, 이들의 적임자가 학교에 부임해 온다. 단 한 사람, 이들을 응원하며, 이들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하게 하려는 이가 있으니, 키팅 선생이다. 그가 교과서를 박박 찢는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도 교과서를 찢어버리라고 한다. 굉장한 파격이다 

 

찢어버려라! 찢어 버려! 이건 교과서지. 성경이 아니야. 이런 걸 찢는다고, 지옥에 가진 않는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찢어버려라! 이런 헛소리는 찢어버려라. 이건 전투다. 전쟁이다. 그 사상자는 바로 너희들의 마음과 영혼이다. 나의 수업에선 다른 사람이 평가한 걸 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배워가는 거야! 이리 모여 봐. 우리는 공부를 위해 시를 읽고 쓰지 않는다.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야. 의학, , 경영, 기계, 이런 것들은 우리인생에서 필요한 것이지. 삶을 지속해 나가는데.... 하지만 시, 아름다움, 로맨스, 사랑...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인거지.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봐야 한다.. 너희 앞에 책상을 밟고 올라가서 세상을 봐라.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거. 날 못 믿겠니? 직접 해봐. 어서... 여러분들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때. 바로 그 때 또 다른 방법으로 그걸 바라보아야 한다. 비록 바보스럽고, 틀린 것 같아도 시도를 해봐.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읽을 때, 작가가 뭘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지마라.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걸 고려해라. 여러분들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도록 노력해라. 시작하는 게 늦을수록, 발견할 가능성은 더 적어지지. 그냥 받아들이지 마라. 그걸 깨고 나와라 우리는 모두 벌레들의 먹이에 불과하지... 제군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언젠가 호흡을 멈출 것이고, 차게 식어질 것이고, 죽을 것이기 때문이야.”

 

 

처음부터 학생들은 의아하다. 선생에게 끌린다. 웬만한 선생들이라면, 골탕의 대상으로 여겼던 아이들, 이 선생에겐 왠지 끌린다.

선생은 다시 아이들에게 나오라고 한다. 그리고 큰 사진, 학교를 빛낸 졸업생들의 졸업사진을 보게 하며 말을 잇는다.

, 이리 한걸음 나와서 이 옛날 사진을 봐. 이리로 나와서 과거의 얼굴들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자네들은 여러 번 이 사진들을 지나쳤지만 자세히 보지는 않았을 거야. 그들은 여러분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그렇지? 같은 머리모양, 여러분처럼 호르몬이 가득했지. 여러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을 거구. 세상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을 거야. 그들은 믿었어. 그들이 거대한 일을 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사실을. 여러분들 중 다수가 그런 것처럼 그들의 눈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그들은 기다렸어. 너무 늦어서 그들의 삶에서 아주 작은 것도 이룰 수 없을 때까지.”

선생은 학생들에게 그리스신화의 나르키소스를 예로 든다.

제군들! 이 소년들은 미루다 미루다가... 끝내는 수선화의 거름이 되고 있어. 죽어서 말이지...여러분들이 가까이서 들어본다면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여러분들에게 주는 유언을. . 기대봐. 들리나? 귀를 더 기울여 봐....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릴 것이다. 어렴풋이...

카르페. Carpe...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잡아라... 바로 지금. 너희의 인생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펼쳐지고 있어... 듣고 있나? 여러분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바로 지금!”

 

 

선생의 교육법은 점점 더 나아간다.

자 올라와 봐, 여기서 보면 모든 게 달리 보여. 시란 관점을 바꾸는 거야. 관습적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에서 보는 거라고. 자자 올라와!”

산만한 학생들에게 그는 학생들 앞에서 책상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책상에 올라오라 한다. 그는 영어 선생으로 부임하여 온 첫 수업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이 학교 출신이니까 물론 후배들이라 자신감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인간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즐겨 읽는 시는 휘트먼의 시들로, 그의 정신을 잘 드러내준다. 자연 그를 따르는 학생들 역시 휘트먼의 시를 애송한다.

 

 

 

나는 앉은 채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루 본다. 온갖 고난과 치욕을 바라본다. 나는 스스로의 행위가 부끄러워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복받치는 아련한 흐느낌을 듣는다.

나는 어미가 짓눌린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려 주저앉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죽어감을 본다.

나는 아내가 지아비에게 학대받는 모습을 본다. 나는 젊은 아낙네를 꾀어내는 배신자를 본다.

나는 숨기려 해도 고개를 내미는 시새움과 보람 없는 사랑의 뭉클거림을 느끼며, 그것들의 모습을 땅위에서 본다.

나는 전쟁, 질병, 압제가 멋대로 벌이는 꼴을 본다. 순교자와 죄수를 본다. 뱃군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설 차례를 정하려고 주사위를 굴리는 모습을 본다.

나는 오만한 인간이 노동자와 빈민과 흑인에게 던지는 경멸과 모욕을 본다. 이 모든 끝없는 비천과 아픔을 나는 앉은 채로 바라본다. 보고, 듣고, 침묵한다.

 

 

키팅 선생이 살고 싶은 삶, 제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삶을 잘 드러내주는 시가 이 시가 아닐까 싶다. 키팅은 시는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해방시키려 한다. 관습에서, 점수에서, 편견에서, 이론에서,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학생들을 성장하게 하고 싶어 한다. 이들을 이를테면 진정한 시인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진정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진정한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스스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존재로 자신의 제자들이 자랐으면 한다. 새로운 날은 오지 않아도 새로운 날을 꿈꾸게 하고 싶다. 그는 시든 인생이든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사랑을 찾으려면 사랑을 찾을 용기를 갖게 하고 싶다.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걸음을 찾게 하고 싶다. 그것은 어렵다. 남들의 눈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란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의 부활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arpe Diem! 즉 지금의 시간을 즐기라는 것이 키팅 선생의 신념이다. '오늘을 살라'고 역설하며 참다운 인생의 눈을 뜨게 하려 한다.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걷게 한다. 마음대로 걸으란다. 트랙을 정식으로 돌라는 게 아니라 걷고 싶은 대로 걸으란다.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그러자 선생이 먼저 시범을 보인다.

걸어 봐. 내키는 대로 걸어 보라고..... 그래 넌 첨엔 마지못해 걸었어. 그리고 넌, 시키니까 걸었어. 넌 자발적으로 운동이 되니까 기꺼이 걸었어. 그런데 잠시 지나니까 모두 같은 방식이야. 걸음 걸이의 방향도, 속도도 같이 맞춰서 걸었잖아. 그냥 걸으라고, 자기 걸음을 찾아 걸라는 거였어.”

그는 자신을 선생이란 부름 대신 캡틴이라 불러 달라 한다. 캡틴, 그건 휘트먼의 시에서 따온 호칭이다. 의미로 볼 때 선장이란 의미다. 그는 그랬다. 그는 선장이었다. 드넓은 바다, 풍랑이 이는 바다의 작은 배를 호기 있게 끌고 나간 선장이었다. 그 안에 탄 선원들, 토드, , 녹스 등, 그들은 그의 진정한 선원이었고, 그는 그들의 선장이었다. 그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을 찾으려 했다. 어떤 아이는 사랑을, 어떤 아이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그 길을 열어가려 했다. 그게 험하고 허망하고 알 수 없는 해로를 그럼에도 즐겁게 헤쳐 갈 수 있는 방식이니까.

 

 

! 캡틴 나의 캡틴! / 휘트먼

 

아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우리의 무서운 항해는 끝났습니다.

배는 갖은 난관을 뚫고, 우리가 추구했던 바를 쟁취했습니다.

항구는 가까워지고 종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사람들은 든든한 선체에 눈길을 모읍니다. 웅장하고 엄숙한 그 배에.

그러나 아, 심장이여! 심장이여! 심장이여!

,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 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있는

우리 선장의 쓰러진 갑판 위에.

,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서 저 종소리를 들으시오.

일어나시라, 깃발은 당신을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을 위해 울리고 있어요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환도 당신을 위한 것

-당신을 위해 해안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

그들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에 놓아요!

이것은 꿈입니다.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집니다.

나의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움직이지 않네.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의지도 없으시네.

배는 안전하게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이 났습니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물건을 싣고 돌아옵니다.

아 환호하라 해안이여! 울려라 종이여!

그러나 나는 슬픈 발걸음으로 쓰러져 누워

갑판을 걷는다, 우리의 선장이 잠든 곳을.

 

 

해서 그들은 그들의 선장이 살아왔던 모습을 따라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든다. 거기서 해방구를 찾는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특히 그의 제자 닐은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음에도 그것을 마음껏 할 수 없다. 그래서 닐은 어른들에게, 자기의 길을 막은 이에게 복수를 한다. 바로 아버지의 물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들만의 클럽도 문을 닫는다. 키팅 선생의 그 배는 좌초한 것일까.

 

앞줄에 섰던 이를 뒤로 보내라 뒷줄에 있던 이를 앞으로 나가게 하라 고집통이, 얼간이, 때묻은 이들로 하여 새 제안을 내도록 하고 낡은 제안은 뒤로 미루고

사나이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계집으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같은 배에 타고도 생각은 각기 다르다. 지레 착한 아이가 되어 보겠다고 배반의 길을 간 아이 카메론, 어른들의 협박에 굴하여 스승을 배신해야만 했던 아이들이다. 그 배에는 예수 시대처럼 나약한 베드로 일당, 배신자 유다 등이 타고 있었다. 그럼에도 키팅 선생이 떠나는 때에 한 아이의 용기로 시작된 진정한 반항은 자신들의 캡틴을 다시 부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실이며 정의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아이들로, 눈을 뜰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키팅, 그는 진정한 캡틴이었다. 다시 부상하는 작지만 단단한 배의 선장이었다.

 

 

“‘카르페디엠오늘을 잡아라, 장미가 피었을 때 장미를 따라. 기회를 놓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누구나 어느 날인가는 숨이 멎고 죽어갈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을 잡아라. 여기에는 사랑도 예외는 아니고 하고 싶은 일도 예외는 아니다.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녹스는 사랑을 위해 지금 나서야 하고 지금 시도해야 하고, 지금 고백해야 하고, 지금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얻어맞고 깨지면 어때. 기회를 놓치고 아무 시도도 못 해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은 거지.

, 연극을 좋아한다면 누가 방해 하더라도 해 보는 거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뭐냐고. 그건 시, 아름다움, 사랑, 낭만 때문이야.”

키팅 선생의 교육법, 파격적이라고 생각할 교육법, 자유로운 인간, 진정한 인문학적 인간을 기르는 교육 방법임엔 틀림없는데, 그의 교육방법을 받아들일 환경이 아니다. 때문에 그 방식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사회의 벽이 선입견의 벽이 관습의 벽이 너무 두껍고 높다.

그래서 닐은 자기 가면을 벗고 솔직해지려 했지만 아버지 앞에만 서면 더 이상 반발을 하지 못하는 순한 양에 불과했으니, 그는 이제 죽은 시인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선생이 꿈꾸었고, 그들이 배웠던 자유로운 이상, 누군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어른들이 그어 놓은 세상엔 없다. 때문에 학생들을 그들만의 공간을 찾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아지트, 그들만의 동굴로 간다.

 

 

죽은 시인의 사회이 세상엔 이제 살아 있는 시인의 사회는 발을 붙일 수 없다. 단지 있다면 꿈속에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그러니 진정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그 세계를 어디서 찾을까. 그들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동굴로 간다. 그 공간만이 살아 있는 시인들의 살 수 있는 사회니까. 언어의 목적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든 아니든, 사랑은 삶의 의미로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 소중한 가치를 미래의 투자라는 명목으로, 점수라는 명목으로 억눌러야 할 뿐이니까.

진정한 삶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 새로운 관점을 찾아 자유를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낭만을 노래해야 하니까. 순응하지 말고 자유롭게 걸어라.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리고 순응의 위험성을 버리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리라.

 

 

이 영화는 학교의 진정한 역할, 어른들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학교의 역할, 그건 점수 따기 기계, 오직 대학에 또는 명문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느냐를 교사의 능력, 학교의 수준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성하게 하는 좋은 영화다. 오래 전에 만든 영화지만 거기에 희생당하는 아이들, 끝내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건까지 가져오게 만드는 어른들, 그 어른들은 다름 아닌 학교의 사람들이며, 그 부모가 공범이라는 점이다.

틀에 짜인 그 안에서 버둥거리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이 애달프다. 언제까지 이들의 그 움트는 속 씨를 누를 수 있을까, 이대로 눌러주면 어른이 될 때까지 운 좋으면 가능할 것이다. 그 다음 어른이 되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지 못하면 학교는 그 학교로서의 역할을 다 한 것이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아예 서서히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길을 선택하고 찾아 가게 하는 게 나은 게 아닐까?

제군들! 귀를 더 기울여 봐. 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릴 것이다. 어렴풋이.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잡아라... 바로 지금. 너희의 인생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펼쳐지고 있어... 듣고 있나? 여러분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바로 지금!” 

 

   -최복현-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9.01.09 15:26

 

 

 

꿈이음 사람책도서관 제1회 홍천의 청년 유투버 박금서 청년의 “유투버, 그리고 주체적인 삶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모임에는 홍천의 많은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였는데 박금서 유투버 활동가를 만나 유투버의 세계와 더불어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여를 원하셨지만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추후 꿈이음 티스토리 및 유투브에 풀 강의 영상을 제작하여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유튜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QctaWKJohg&feature=youtu.be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
2018.12.27 09:21

좋은 교사도, 나쁜 학생도 없는 / 교사와 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클 래 스

 

 

감독: 로랑 캉테 / 영화감상평: 최복현


 

 

 

 

중학생, 괴물과 같은 아이들이라 지칭하는 중학생들이 활개 치는 교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교사는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들은 어떻게 교사를 대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학생과 교사가 서로 마치 적이라도 되는 양 대립하고 있다면, 양측 사이엔 뭔가의 벽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벽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벽, 깰 수 없는 벽, 그 두꺼운 벽을 실감할 수 있는 영화다.

 중학교 교실, 그 중에서 2학년 3반 교사는 프랑수아다. 프랑수아 선생이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나 학생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선생을 선생으로 보지 않는다. 선생의 약점을 잡으려 들고, 말대꾸만 하려고 한다. 그러니 프랑수아는 속이 탈대로 탄다. 난감하다. 도무지 통제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자릴 비우면 의자들이 학생들을 대신하여 어지럽다. 같은 방향이 없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댄다. 마치 무공해지역에 들뛰는 메뚜기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댄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주로 수업 시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단순할 것 같은 교실, 별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 교실의 모습들이 긴장감을 더해준다. 뭔가 벌어질 것 같은 조짐이 상존한다. 그래도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교사들이 울화통을 애써 참기 때문이다.

교사 프랑수아는 특출 난 교사는 아니다. 그저 평균적인 교사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면 조금 다르다 할까? 아이들이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짓궂게 장난을 쳐도 주눅 들지 않고 어떻게든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쳐보겠다 애쓰는 그런 정도의 교사, 그럼에도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평균 정도의 교사다.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무능한 선생도 아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들 사이엔 벽이 있다. 도무지 깨어지지 않는 벽이 있다. 그럼에도 프랑수아 선생은 끝없이 학생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벽을 어떻게든 깨보려 노력한다. 가장 보편적인 선생, 무능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그는 무척 힘들게 교사생활을 한다. 그는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쳐 보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와 아이들 사이의 벽은 끝내 깨지지 않는다.

 

 

아무리 통제를 따르지 않아도 달리 제재할 방법도 없다. 매를 들 수도 없다. 험한 말을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가르쳐 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란 교사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걸 참아내는 게 용하다. 꼬박 꼬박 말대꾸하고 비웃어 대는 아이들은 학생들은 “배워봐야 알죠. 말뿐이라는 거....” 서로 다른 생각, 학생과 교사의 벽, 학생들은 꼬박꼬박 대들고, 교사는 할 수 있는 통제수단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너무 지겹게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게 불만이다. 매로 다스렸다가는 큰일 나고, 그렇다고 욕을 하면 인권침해란 비난을 듣거나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가 어쩌다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 아이들의 특성을 알기 때문에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는데 어쩌다 한 마디 말실수를 했는데, 아이들이 꼬투리를 잡아 그를 괴롭힌다. 제법 가까워진다 싶었는데, 하필이면 한 아이를 퇴학 시켜야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웃는다. 그 일로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던 그의 반 학생들 중에서 한 학생은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다. 그러자 교사는 선생 노릇 못하겠다며 교사로서 회의감은 느낀다. 아이들은 이이들대로 ‘존경할만한 선생이라면 얼마든 존경할 것’이라고,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잘 따르지 않는 건 교사가 무능하기 때문이고, 믿을 수 없기 때문’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학생들과 교사는 그렇게 공존하긴 한다.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학교는 학교대로 존재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특별한 해답 없이 스크린에서 점멸한다.

 

 

프랑스 학교 교실의 모습,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의 교실 모습과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부제가 벽 사이에서인 이 영화는 그다지 교실을 미화시키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나라 중학교의 현주소를 견주어 보면 참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중학생들이 주인인 교실, 그야말로 학생 수만큼의 문화가 상존한다. 그 문화의 충돌은 전쟁과도 같다. 이게 중학교 교실의 현주소다. 이 영화는 과장하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로만 보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교권 하락의 시대다. 어떤 이는 그럼에도 교사가 사랑을 베풀어주면,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면 다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교생실습을 한 적이 있는 난, 자신이 없다.

이 영화를 보면 나는 정말 교사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한다는 건 신의 경지에 가까울 것 같아서다.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 교실도 이렇다면 나는 그 교사들이 참 존경스럽다. 그들의 인내심이, 그들의 지도 요령이 존경스럽다.

중학생들이 판치는 교실을 체험하지 못한 어른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무조건 내 아이만 옹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교사는 교사대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영화다. 교사라면 최소한 프랑수아 선생 정도는 되어야 평균은 갈 테니까. 물론 그 이상의 교사를 꿈꾸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중학교 교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최복현-

Posted by 홍천교육복지네트워크_꿈이음 꿈이음